퍼즐로 붙는 사무라이들, 타케(TA-KE)

보드게임 2019. 4. 6. 14:49 Posted by 설찬범



  전략 보드게임의 단골 배경을 고르자면, 우주와 판타지 대륙이 있습니다. 실존 배경을 찍자면 2차대전 유럽이 있겠고 그 뒤를 중세 일본이 따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섬나라에 수많은 장군과 무사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 죽이고 공격하고 힘을 합치고 배신하는 혼돈. 그 당시 사람한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였을지 모르겠지만 게임 제작자한테는 너무 매력적인 시대입니다. 토탈워 쇼군이나 노부나가의 야망(우리나라에서는 노부나가를 우리나라 한자식으로 읽은 신장의 야망으로 유명합니다)처럼 컴퓨터 게임으로도 유명하고, 보드게임도 2006년에 쇼군이라는 작품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런 게임은 드넓은 일본 땅에서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분투를 다루고 있고, 그래서 판도 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TA-KE는 일본 땅도 긴 칼을 치켜든 사무라이 말도 없습니다. 자그마한 판에 칸들이 오밀조밀 들어 있습니다. 타-케는 싸움보다는 계산과 계략으로 싸우는 게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캐릭터 칩을 중앙 다섯 칸에 골고루 쌓습니다. 두 플레이어는 귀신 토큰을 받고 자기 점수말을 점수칸에 놓습니다. 이제 쌓아놓은 캐릭터 칩을 가져와, 캐릭터의 능력을 발휘하며 점수를 모아야 합니다.


  다이묘는 사무라이를 불러옵니다. 로닌은 귀신 토큰을 재조정합니다. 귀신 토큰이 있어야 캐릭터 칩을 불러오거나 상대방이 다른 캐릭터를 못 불러오게 할 수 있습니다. 게이샤는 귀신 토큰 없이도 캐릭터를 이동시킵니다. 닌자는 상대방 캐릭터를 움직이고, 사무라이는 다른 캐릭터를 싸우며 보호합니다.





  플레이어가 쌓인 캐릭터를 가져와 자기 구역에 놓으면 즉각 점수가 계산됩니다. 재밌는 점은 캐릭터 칩을 들어올리고 밑에서 드러나는 캐릭터에 따라 점수가 계산된다는 점입니다. 게이샤를 가져왔어도 밑에 있던 칩이 닌자라면, 닌자 기준으로 계산됩니다. 그러니 급하게 생각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건 상대방도 동시에 적용됩니다. 잘 못 알아들으셨다고요? 여러분이 점수를 계산할 때, 상대방도 같이 계산됩니다. 여러분보다 상대가 닌자가 많다면, 여러분보다 상대방이 점수를 더 얻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머리를 쉼 없이 굴리세요.


  모든 캐릭터 칩을 가져가고 사용하면 경기가 끝납니다. 이제 계산법에 따라 남은 점수를 계산하고, 점수가 더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어 살아갑니다. 우리야 햇빛을 못 받으면 비타민 D가 모자라거나 얼굴이 창백한 것에 그치지만 숲속 나무들은 햇빛이 없으면 죽고 맙니다. 그래서 나무는 서로 밥줄인 태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그렇습니다. 식물들도 느릿하긴 하지만 야생동물처럼 생존을 걸고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옆 나무보다 빨리 크지 않으면 그림자 속에서 죽어야 하니까요.


  Photosynthesis(광합성, 아마 포토신테시스로 읽어야 할지도)는 제목 그대로 광합성으로 나무를 기르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만 나무를 기르지 않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나무를 쑥쑥 기릅니다. 다른 사람이 키우는 옆 나무가 높아지면, 그림자가 생기고 여러분의 나무는 자라지 못합니다. 아파트와 다르게 나무에는 일조권 같은 건 없습니다. 약육강식은 식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보드는 처음엔 비어 있지만, 플레이어가 외곽부터 나무를 심습니다. 참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등 다양합니다. 아직은 모든 나무가 같은 햇빛을 받습니다. 하지만 숲에 나무가 조금씩 들어찹니다. 나무가 커질수록 그 나무의 그림자도 길어집니다. 나무가 커지면 맵 전체를 가로지를지 모릅니다. 나무는 높게 뻗은 모형을 써서 2D 타일을 놓는 것보다는 훨씬 멋집니다. 그래도 더 나무처럼 가지도 쭉쭉 뻗은 모형이었다면 더 괜찮았을 텐데요(물론 가격도 아주 '괜찮'았겠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태양도 갈수록 움직입니다. 태양은 턴마다 시계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당연히 그림자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플레이어는 다음 나무를 심을 때 이걸 고려하지 않으면 상대방 그림자에 된통 당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나무가 받은 햇빛은 점수가 되어 저장됩니다. 제일 크게 자란 나무는 3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점수로 빈 땅에 나무를 심거나 이미 심은 나무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초반에 여러 나무를 심을 것인지 한 나무를 우직하게 키울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게다가 상대방 전략에 따라 내 전략도 바꿀 수밖에 없어서 전략 다양성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매 판마다 보드 위에 알록달록 나무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꽤 귀엽기까지 하지만, 막상 진지하게 들이대면 정말 진지해질 수 있는 게임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숲의 제왕이 될 수 있을까요?

알록달록 타일 배치, 아줄(Azul)

보드게임 2019. 4. 5. 15:50 Posted by 설찬범



  마이클 키슬링은 <티칼>이나 <토레스> 등을 제작한 보드게임 제작자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디자인과 독창적인 퍼즐로 고정팬을 늘려 온 그가 이번에는 색감 있는 타일을 까는 게임을 가져왔습니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고유의 타일 무늬로, 타일 위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문화를 일컫습니다. 원래 무어 인에게 유래한 아줄레주는 포르투갈과 포르투갈이 한때 진출한 남미와 필리핀 등에 전파되었습니다. 그 기원을 타고 올라가면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포르투갈 마누엘 1세가 스페인 알함브라를 방문했을 때 그 아름다운에 흠뻑 빠져 포르투갈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알함브라도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물론 아줄에서 사용할 타일은 도자기가 아니라 합성수지로 만든 타일입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보자기 속에 자그마하게 들어 있어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줍니다. 플레이어는 타일을 가져와 각자 앞에 놓인 자기 보드에 배열합니다. 턴마다 원하는 색 타일을 가져오기 위해 서로 거래하고 협상합니다. 그냥 배열한다면 재미가 없겠죠. 규칙에 맞게 배열하면, 마치 카드 족보를 완성하듯 보너스 점수를 받습니다. 게다가 배열에 참가하지 못한 잉여 타일은 감점이 되므로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간단한 규칙 때문에 직관적이고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어린이도 조금만 배우면 타일을 적용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보여에 다섯 타일로 가로 줄을 만들자마자 게임은 끝납니다. 하지만 끝난다고 했지 이긴다고는 안 했습니다. 여러분 점수가 제일 높을 때만 게임을 끝내는 것이 좋겠죠.


  시작은 선택지가 많아 꽤 무작위로 보입니다. 모두 자기 취향에 맞게 색돌을 고릅니다. 그러다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돌을 차지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남은 색을 선택하는 가능성이 조금씩 가늘어집니다. 게다가 남는 돌은 감점이 되는 데다가, 색을 독점하면 그 색을 지닌 다른 플레이어는 많이 곤란해집니다. 타일 까는 게임치고는 견제와 작전이 많아지는 편이죠.


  무언가 자기 보드로 가져와 배열하거나 까는 게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직관적이고 아름다워서 비주얼로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그 덕분에 가격도 아름다운(?) 편입니다. 하지만 아줄은 심심풀이로 하기에는 살짝 깊이가 있는 게임 같습니다.



  서바이벌 어드벤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폴아웃을 앞세운 컴퓨터뿐만 아니라 보드게임도 마찬가지이려나요? 2079년, 광야를 떠도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자원, 장비, 큰 목표를 위해 싸우고 결국 오염된 땅에서 탈출할 수 있는 팀은 하나뿐입니다.


  핵전쟁인지 전염병인지 대지진인지 모르지만, 세상은 망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지하벙커에서 몇몇 인원을 데리고 시작합니다. 방도 장비도 생존자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바뀔 겁니다. 낮 시간에  플레이어는 자기 팀 소속 다섯 팀원 중 하나를 이동시켜 물건을 모으고 야생동물을 사냥합니다. 낮이 끝날 무렵에 물, 고기, 통조림, 목재, 전기 부품, 철, 탄약과 벙커로 들어올 다른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공간을 채우면 보너스를 얻습니다. 물론 그들은 모두 먹어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라운드가 끝날 때 죽습니다.





  아웃라이브는 서술이나 이벤트만 간략히 있을 뿐 이렇다 할 스토리는 없습니다. 주인공의 힘은 전리품의 양을 결정하므로 다른 4~5개 물건만 수집할 수 있습니다.


  인물은 최대 2칸까지 이동시킬 수 있고 이미 자기 것이 있는 타일 위에 올라갈 수 없으므로, 말 배치도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영리한 움직임과 효과적인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인물이 어떤 자원에 접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자원은 벙커와 식량 등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완전히 차지한 공간이 주는 보너스는 건물, 수집 및 제조와 같은 향후 조치를 상당히 저렴하게 만들기 때문에 승리의 열쇠입니다.





  처음에는 창고에 결함이 있는 장비를 고쳐야 합니다. 손전등, 톱, 곡괭이, 산탄 총, 배낭과 원자재를 수리해야 합니다. 더 수확하기 위해,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강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템은 색깔로 구분된 더블 콤보가 있으며, 단일 장비보다 더 많은 승리 포인트를 가져옵니다. 석궁과 톱, 액세스 카드와 캐니스터 등. 하지만 모든 장비는 턴마다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이렇게 자원을 모으며 상호작용을 한다면, 밤에는 생존자를 먹이며 벙커를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합니다. 이런 식으로 6일기 계속됩니다. 즉 12턴이 있는 셈인데, 승리하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입니다. 과연 이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가 될까요?



  때로는 흑백이 컬러보다 강렬합니다. 3D에 4D까지 영화관에 들어오는 시대에 이따금 흑백영화가 나오는 건 그 단순함과 묵직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도 그렇잖아요. 같은 사진도 흑백이면 뭔가 있어 보입니다. '이스케이프 더 다크 캐슬'도 모든 것이 흑백이어서 옛날 공포영화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게다가 배경이 음침하고 위험한 고성이라면, 이거 노린 거 맞죠?





  '이스케이프 더 다크 캐슬'은 보드게임보다는 TRPG 느낌이 납니다. 플레이어는 각자 여섯 인물(요리사, 재봉사, 방앗간 주인, 무두장인, 대장장이, 수도사) 중 하나를 고릅니다. 인물마다 의지, 간계, 지혜로 세 가지 특성 수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인물이 되어 어두컴컴한 고성을 탈출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괴물과 함정이 곳곳에 도사립니다. 턴마다 난관을 만나고, 그에 맞춰 주사위를 굴리고, 상의 끝에 난관을 탈출하는 모습은 TRPG, 나아가 조별과제나 아침 업무회의를 떠오르게 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선 잘못하면 목숨이 바로 날아간다는 점이죠. 종이와 펜으로 끼적이는 것도 TRPG가 생각나게 하는 요소입니다.


  다음 턴에 무엇이 나올지는 모릅니다. 한 장씩 뒤집으며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감옥 간수와 포악한 짐승일 수도 있습니다.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뇌물을 줄 수도 있고, 몰래 지나가거나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창고를 맞닥뜨린다면 그냥 지나갈지 뭐라도 있을지 뒤져볼 수 있습니다. 계획을 잘 짠다면 큰 문제 없이 지나갈 겁니다. 물론 주사위 신이 여러분을 가호한다면 말이죠. 싸우기로 하셨다면 능력과 그동안 얻은 무기와 아이템을 바탕으로 잘 때리고 막으시길 바랍니다.





  협력 게임 아니랄까 봐, 이 게임은 한 명이라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러니 게임의 끝까지, 어두운 성을 탈출할 때까지 전원 생존해야 합니다. 그러니 다른 보드게임처럼 배신할 생각하지 마시고 오랜만에 백 퍼센트 협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2000명이 넘는 후원자가 밀어주어 완성된 킥스사터 제품이니 재미는 걱정할 필요가 덜하겠죠?

소리없는 아우성, 더 마인드(The Mind)

보드게임 2019. 4. 3. 21:37 Posted by 설찬범



  전략, 일꾼 배치, 4X... 보드게임에 장르 목록은 오늘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역학과 본질로만 따지면 어느 정도 비슷한 장르도 있지만, 다른 문화예술이 늘 그렇듯 보드게임도 어느 날 '돌연변이'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접근법과 디자인은 늘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더 마인드(The Mind)는 일종의 집단 심리 게임입니다. 판데믹처럼 플레이어들이 협력하는 게임은 많지 않았냐구요? 하지만 이건 다릅니다. 과연 아무 소통 없이 팀이 협력할 수 있을까요?


  침묵, 완전한 침묵이 이 게임의 규칙입니다. 아무도 테이블에서 말도, 수신호도, 표정 변화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의사소통은 전면 금지입니다. 그 덕분에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보드게임이 되겠군요. 어디 볼까요. 플레이어 네 명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네요. 누가 다음 카드를 낼까요? 확실한 건, 테이블 중앙에 84번 카드가 있다는 겁니다. 이제 남은 목숨은 하나. 무조건 84보다 높은 카드가 나와야 합니다.




  쉬워 보인다고요? 문제는 누가 84보다 높은 카드를 지녔느냐입니다. 내가 90을 가졌으니 바로 내면 되지 않느냐고요? 여기부터 이 게임의 재미입니다. 플레이어들은 84보다 높되 다른 플레이어가 가진 카드보다 높은 것을 내면 안 됩니다. 내가 90을 가지고 있지만, 옆 사람이 88을 가지고 있다면? 앞 사람이 86을 가지고 있다면? 그럼 90을 내는 순간 목숨이 하나 날아갑니다.


  모두 한몸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소통을 못 하다 보니 모두 답답합니다. 물론 누군가 85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 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행운이 자주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모두 손에서 카드를 비우면 승리하는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두 명이면 12레벨까지, 세 명이면 10레벨까지, 네 명이면 8레벨까지 클리어해야 진짜 승리입니다. 플레이어는 레벨 수와 같은 카드를 나눠 받습니다. 즉 1레벨에는 서로 한 장씩, 2레벨에는 서로 두 장씩인 셈이죠. 네 명이 8레벨까지 가면 32장의 카드를 순서대로 놔야 합니다. 물론 아무 의사소통 없이,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말이죠.




  더 마인드는 값이 싼 게임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1부터 100까지 인쇄한 카드랑 라이프를 나타내는 말이 답니다. 좀 불편하겠지만 플레잉카드로 여러분끼리 순서를 정해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긴장과 눈빛 교환이 이어지는 게임으로, 파티 게임과는 정반대로 스릴을 느낄 것 같습니다.



  2849년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우주로 진출했고, 수많은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좁디좁은 지구에 살던 시절엔 다들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우주에 나간다고 인류가 평화롭게 살 거라 생각했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합니다. 당연히 우주에서도 한 발자국이라도 잘 나가려고 다투지 않겠습니까? 다행이 우주에서 '펄사'라는 자원을 발견했습니다. 지구의 석유처럼 펄사도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넓은 우주에 귀중한 자원? 이거 또 다툴 이유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컴컴한 우주에 파란 별, 노란 별, 초록 별, 주황색 별... 펄사 2849의 보드판은 8~90년대 보드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속은 꽤나 말끔합니다. 많은 우주 전략 게임과 다르게, 이 게임은 4X의 티가 나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 게임은 쿼리도와 같은 기하학, 추상 전략게임에 가깝습니다. 분위기만 미래지향일 뿐이죠.


  플레이어는 주사위 두 개를 던집니다.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처럼 둘을 던지고 그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과연 어느 주사위를 골라야 할까요? 정찰선으로 우주를 비행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얻은 에너지는 전해주거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보드게임 이클립스가 떠오릅니다. 모두 우주 끄트머리에서 시작해서 효율적으로 세력을 넓혀야 합니다. 모든 주사위 선택은 다른 주사위에 영향을 주고, 부작용도 있으므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합니다. 거기에 우주 배치에 맞추어 기하학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보드에 있는 중성자 별을 처음 차지하면 정기적으로 점수를 얻습니다. 같은 종류 중성자별 둘을 완주하면 보너스를 챙깁니다. 연구를 마치면 더 많은 선택지와 잠재력이 생깁니다. 이런 보너스와 전략은 게임의 중반이 되면 빛을 발하면서 게임을 정말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기술은 매 게임 전에 무작위로 드러납니다. 특허로 기술을 얻으면 승점이나 텔레포트, 더 좋은 우주선을 몰 수 있습니다.


  영토를 넓혀가는 전략 게임은 원래 한 번 잡으면 도끼뿌리 썩는 줄 모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문명이 '문명하셨습니다'로 악명이 높죠. 하지만 펄사 2849는 겨우 8라운드만 진행하기 때문에 짧고 빠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른 전략이 전투라면 이 게임은 검사들의 결투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 북동쪽에 있는 거대 피라미드 유적입니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이 유적은 훗날 아즈텍 시기 '신의 탄생지'라는 뜻에서 티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아즈텍 사람들도 모르는 유적이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감이 오시겠죠. 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무너지던 중세 초기, 이곳에는 20만에 달하는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이국적인 발음의 유적을 보드게임으로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여타 게임에서 점수 하나를 모으려면 얼마나 끈질기에 일꾼을 배치하고 자원으로 시설을 짓고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해야만 했습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 이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보상이 쏟아집니다. 게임 후반에 다다르면 플레이어들은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숨가쁘게 달려야 합니다.


  게임 제목과 같은 이 피라미드는 실제 보드 중심에 있으면서 게임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돌마다 새긴 무늬도 그렇고 쌓는 모습도 그렇고 웬지 마작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규칙에 맞게 짝을 지어 없애는 마작과 다르게 여기서는 규칙에 맞게 쌓아올려야 합니다. 잘 쌓아 올린다면 보너스를 얻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노동력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에 따라 일꾼을 움직입니다. 일꾼을 놓아 보너스를 얻고 거주민이 살 집을 짓고 자원을 모읍니다. 자원에는 금, 돌, 나무 등이 있습니다. 아니면 아까 말한 피라미드에 돌을 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규칙에 맞게 올려야겠죠. 게임은 총 세 시대로 구성됩니다. 이 세 번의 시대마다 점수를 합쳐 명성이 제일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주사위로 일꾼을 부리다 보니 조금 운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풍부해 보이면서 제한된 선택지를 고르고, 아름다운 보드 위에서 조금씩 도시를 완성해 가다보면 이런 건 잊게 됩니다. 피라미드 타일도 두께가 있어서 쌓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웬만한 나라의 유적은 건설 컨셉 보드게임으로 완성이 되었는데, 언젠가 수원 화성이나 한양 도성을 짓는 보드게임이 국내 개발자의 손에서 탄생하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틴 월러스를 아십니까? 유명한 보드 게임 제작자고 아주 부지런한 제작자기도 합니다. 라이즈 오브 엠파이어, 에이지 오브 스팀, 디스크월드 등을 제작했으며 거의 1년에 한 번씩 작품을 내놓는 다작가입니다. 그동안 그는 역사적 주제와 경제, 시장, 전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오즈트렐리아에서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바로 크툴루 신화 말입니다.


  그레이트 올드 원이 이기기 직전입니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공포의 존재라니 호주를 덮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1시간도 되지 않아 그들의 승리점수를 나타내는 보라색 말이 인간의 노란색과 빨간색 말을 앞지를 겁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도 건설과 수확과 경제와 교통과 군사가 다 들어가 있어서 플레이어는 더욱 바쁠 겁니다. 엄격하고 정교한 4X 전략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탄탄한 구조를 지닌 게임입니다. 아마 지자마자 '한 판 더!'를 외칠지도 모릅니다.




  플레이어는 아직 괴물이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건설로 방비해야 합니다. 무슨 괴물이 나올지는 미리 카드를 뽑기 때문에 어떤 크툴루 신화 속 존재가 지구를 습격할지는 모릅니다. 네 가지 자원(철, 석탄, 금, 인)이 흩어져 있으니 꼼꼼히 모읍니다. 이제 철도를 타고 호주 내륙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자원으로 철도를 짓고 농장을 지어 옥수수와 양 등을 수확하고 수출입하고 군대를 모읍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 잘 생각하면서 거래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이 모든 행동은 '시간'을 소모합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표시말이 보라색 말을 넘으면, 크툴루의 괴물이 기지개를 폅니다. 이제 괴물은 또 하나의 플레이어처럼 행동합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괴물이 농장을 습격해 박살냅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부서집니다. 이들이 여러분의 시작 지점인 항구까지 점령한다면 게임이 끝납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우선 괴물이 깨어나기 전에 시간을 알뜰살뜰 써야 하고, 군대와 자원을 미리 잘 배치해야 합니다. 또 시간이 다 되어도 게임이 끝나므로, 괴물을 굳이 몰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다른 플레이어보다 잘 살기만 해도 됩니다. 농장을 파괴하게 두느니 다른 시설로 유인해서 그곳이 박살나개 둘 수도 있습니다. 괴물을 물리치려면 가끔은 괴물이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호주 땅에서 여러분은 형언할 수 없는 괴물의 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브레이킹 배드 : 보드게임

보드게임 2019. 4. 3. 13:22 Posted by 설찬범




  이십분도 걸리지 않아 총격전이 벌어지고, 실험실이 폐쇄됩니다. DEA(마약 단속반)가 이미 월터 화이트와 마이크 어만트로트 뒤에 있는 지하 거물들을 철창에 집어넣었습니다. 이제 투코 살라만카만이 활동할 뿐입니다. 단속반이 그마저 잡는다면 게임은 끝납니다. 하지만 투코와 부하들이 '블루 스카이'를 세 개만 팔면...


  브레이킹 배드는 미국 AMC 방송국에서 방송한 드라마로, 마약을 제조해 판매하려는 두 선생의 고군분투를 다룹니다. 전설적인 연기와 스토리로 추천 미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브레이킹 배드가 보드게임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약 딜러가 되어 마약왕이 되어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정의의 편에 서서 도시를 어지럽히는 놈들한테 철창맛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브레이킹 배드는 드라마의 라이센스를 따온 게임이지만 TV에서 보던 익숙한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월터 화이트는 최고의 '요리사'고, 마이크 어만트로트는 총격전에 강하고 라이신도 독극물로 등장합니다. 기관과 갱단의 전쟁 사이에서 가끔은 적끼리 손을 잡는 것이 유용합니다. 같이 '요리'하고 변호사로 상대를 도우면서 서로 윈윈해 보세요.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범죄라는 컨셉에 맞게 긴장감이 천천히, 하지만 눈에 띄게 증가합니다. 게임 플레이의 백미는 갱단이 성공할수록 갱단과 경찰 모두 강력해진다는 점입니다. 경계등급은 게임 내내 조금씩 상상합니다. 마약이 팔리고 게임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상황은 급박해지고 시한폭탄처럼 다가옵니다. 





  브레이킹 배드는 전략보다는 운에 치중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를 골라 캐릭터에 빙의해 욕도 하고 싸움도 걸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화학자느 실험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처음에는 협력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승자가 되려면 언젠간 칼과 총을 겨눠야 합니다. 사람마다 특수능력이 있으니 잘 활용하고, 동맹을 맺어 봅시다. 사울 변호사는 여기서도 경찰에 대치하기 딱 좋습니다.


  DEA는 방탄 조끼를 만들 수 있고, 마피아는 비밀리에 숨을 수 있습니다. 복수와 도둑질이 난무합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카드를 놓거나 사용하고, 특수 능력을 쓰거나, 실험실을 열거나, 화학자를 제거하거나, 약을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 특히 범죄자일 때는 승리를 위해 약을 팔 수 있습니다. 블루 크리스탈을 여러분 실험실과 화학자 사이에 놓습니다. 그 상태로 턴이 돌수록 승리가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DEA는 실험실을 습격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화학자가 있는 플레이어만 약을 만들 수 있으니, 잘 생각해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